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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방향이라기 보다도, 내 전공과 관련된 서적을 읽고 싶었다. 너무 뇌과학과 자기반성에 절여진 것같아서, 전공에 대한 몰입도 높일겸 시작한 책이다. 

한 유튜브를 보다가 저자인 김광현 교수를 알게되었는데, 기성세대가 된 제자들과 건축에 대해 토론하는 것들을 보고 인상깊어서 예전에 밀리의 서재에 검색해두고 저장해뒀던 도서 목록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읽게된 전공서적이기도하다.

실질 전공은 인테리어 디자인이지만, 그 작품의 범위가 넓어지다 보니, 건축 디자인까지 영역을 확장시킨 경우다. '디자인'이라는 영역에서 활동하기에 시각적이고, 프로그램적인 접근이 많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과연 시각적이고, 경험적인 행위 말고 실질적인 사용자를 위한 배려를 고려한적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아직 내가 건축주 혹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본적도 없고, 그들을 상대로 간접적으로라도 디자인해본 경험조차 없기에 당연히 없을 일일지도 모르겠다만, 한번 짚어두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는 건축은 심오하다. 일단 건축과 삶을 연결지어 말하는데, 마치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와 같고, '계란이 먼저 닭이 먼저'와 같아 보인다. 삶(사회)이 건축을 담고 있는지, 건축이 삶(사회)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양면의 극단에 단점이 존재하며, 어느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독창성은 있어야하지만, 그 독창성이 개인의 것은 아니어야한다. 그렇다고 모두(전체)의 것도 아닌 것이다. 그 애매한 건축이, 근대건축의 시간/장소적으로 획일적인 행위를 보인바, 그 위치가 다소 폭력적이고 사회 의도적이다. 그 사회 의도적이라는 것도 진정 사용자를 위한 고려와 의견 반영이 아닌, 정치행정 관리인들과 건축가의 지레짐작을 통해 만들어진 그럴싸한 건축들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건축이 사회를 담는 행위에도 그 오만함이 분명하다. 건축이 뭐라고 사회를 의도적으로 바꾸겠는가. 그럼에도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적인 의도성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건축이라는 것이 무질서한 자연에, 질서라는 안정감을 세운 것이니까. 그렇지만 사회의 질서를 건축에게 요구하는 것은 건축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듯 보이기도 한다.

 

나는 건축과 인테리어를, 내 자아실현을 위한, 내 철학 관철을 위한 매체,도구로서 생각했고, 펼쳤다. 그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드는 것은, 순수예술로서의 건축(?)으로 일을 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돈버는 일과 자아실현의 일을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것에 대한 가치는 과연 헌 것의 가치에게 굴복당할 것인가? 헌 것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새 것으로 탄생한 건축이 역사성과 시대성, 예술성의 가치를 지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공간이라는 것이 순간의 것이 아닌가? 순간의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단 말인가? 그 옛적 위대한 건물들도 그 순간의 웅장함을 높게 평가하고, 건축의 방식, 최초성에 감탄하는게 아닌가?

저자가 말하는 것이 어떠한 흐름에 대한 강조라고 보이긴한다. 명확한 의도로 만들어진 사용자 기반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같다. 단순히 화려한 것이 아니라.

 

건축주와 건축가가 만드는 건축은 어쩌면 나에게 기회가 열린 시대일지도 모른다. '설득'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사람들이 건축에 대해서 더 몰랐으면 하는 바람도 살짝은 있다. 나의 경향을 좀 더 투영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때문이기도 한데, 이는 내가 아직 예술이라는 범주에서 공부해서 그럴지도 모를 철없는 생각이겠다. 아직 설득도 어려워하는 마당에! (제안서)

건축가가 만드는 저작물은 왜 다수에게 팔릴 수 없는가. 그렇다고 건축주가 세상 유일한 창작물에 대해서 건축가가 만족할만한 페이를 하는가? 그렇다면 건축가는 앤디워홀이 되어야한다. 찍어내는 집. 건축가는 사회공헌을 위한 직업이 아니다. 어느 유튜브를 보다가 돈을 바란다면 하지말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이게 무슨...

 

우리는 기능이라는 범주화된 분석으로 사용자와 사용자 목적 등을 분석한다. 그에 맞춰 설계의 합리성을 찾곤하는데, 그것이 과연 진정 그들을 위한 기능인지, 사회 복합적으로 이로운 것인지 생각해봐야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욕망에 집중했다. 욕망은 무엇인가? 욕망은 필요 이상의 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양분을 원하는 것이 아닌, 맛있는 샤브샤브를 원한다면 그것이 욕망이다. 이 욕망은 다른사람의 욕망을 따르기도하며, 다른사람이 가지고 싶은 것을 나도 가지고 싶어한다. 부러워한다. 그렇게 발생하는 중에서 건축도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같다. 여기서 욕망은 흐름이라 말하며, 소비가 아닌 생산이라고 말한다. 소비를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욕망을 생산하는 그런구조일까. 뒤에서 말하고자하는 저자의 의도가 흐름적으로 이어지는 트렌드적인 해석을 말할까? 

그 뒤는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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