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김광현 _ 4편
집에만 머무른지 며칠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그 덕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게을러졌다 정말. 매번 게으름을 토로하고 있는 것같아서 창피지만. 매번 느낀다. 내가 너무 계획을 무리하게 잡은걸까. 그 정도는 해야하는거 아닌가. 아니다 보통은 내가 집중 못하고 멍하니 핸드폰만 바라본 탓이겠지.
그렇게 새로 읽은 것보다는, 읽기만 하고 글을 쓰지 않은 것들을 다시 되새기며 써내려간다.
--------------------------------
이야기는 <3부 건축을 소비한다는 것> 이다. 이 파트는 그리 길지 않고, 보통의 건축과 공간에서의 계급과 균질됨을 다룬다. 그리고 그 균질됨으로부터 파생된 상품으로서의 주택과 주거 계급에 대해 설명한다.
공간의 계급 - 공간이 지구의 지면에 중력을 이겨내고 자리를 잡는 순간, 덩어리(Mass)끼리의 관계성에 인간의 본능과 관계가 주입되어 계급을 형성한다. 이를테면, 높은 층의 펜트하우스, 테라스가 넓은 집, 역세권, 한강뷰, 시티뷰, 오션뷰 등. 최소화된 프라이버시에 최대화된 프라이버시를 가진 집을 높은 가격을 주고 산다. 이는 최소한의 주거를 선택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어보인다. 다양한 주거를 만들고자한 시도는 있었겠으나, 분명 경쟁이 디폴트인 자본주의에서는 도태되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그러한 실현에 있어 수익구조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사실은 어떤 결과값이 사회에서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분명이 맞아 떨어져야한다는 것이 있다. 미스반데로어의 1951 판스워스(Fansworth) 주택과 르 코르뷔지에의 부아장 계획(Plan Vosin)이 우리 지구에 위대한 효율성 넘치는 건축 재료 혁신과 도시 계획으로 인식되면서, 온 지구가 똑같은 재료, 구성으로 뒤덮여 갔다. 좋은 집, 안 좋은 집 모두가 공간에 대한 경험보다는, 마감재, 기능의 여부, 뷰의 훌륭함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삶의 질은 상승했고, 대규모자본의 자산도 증가했다. "그렇게 '중심-주변' 시스템을 반복하고 강화했다. " 그렇게 중심은 강해졌고, 하나의 중심이 아닌 여러 중심을 만들어 '다른 세계에 사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들었다.
화폐로서의 균질 공간 - 모두가 비슷한 주거에서 산다. 이는 중고차 시장과 같다. 디자인이 튀면 수요가 적다. 그러면 비싼 값에 되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간은 화폐의 역할을 한다. 그렇게 대다수의 눈에 이쁠만한 인테리어를 한다. 이를 저자는 장소성에 결부시켜 물류공간,경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기능만 남겨진채 기계장치가 되어버린 공간에 대해.
동역(同域) / 이역(異域) , Iso-topie / Hetero-topie - 저자는 후자인 르페브르의 '헤테로토피'를 강조하는 듯보인다.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 기능과 계급이 자리잡고 남은 역할이 다른 공간을 '헤테로토피'로 정의한다. 거부당한 공간이 있고 이는 정상적이지 않은 공간이 있다. 허나 이러한 언어적 표현과는 다르게, 비규격적이고 균질하지 못하지만,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공간들이다. 유토피아다. 푸코는 이 공간을 '헤테로토피아'라고 불렀다. 현대의 노동력이 존재하는 공간이 정상인 공간에 반해, 노동력이 존재하지 않는 요양원, 감옥, 정신병원, 묘지, 박물관, 미술관,영화관, 기숙사, 병사, 피난소, 흑인 거주 지구, 피차별 마을 처럼 배제되는 장소를 헤테로토피아 라고 부른다. 미술관, 영화관 등을 자본시장을 매개로 이용한 배제공간이라고 보고 있다. 단순히 낙후된 것이 아니라, 배제되었음을 표현한다. 이에는 배제되었으나, 노동력이 충분히 들어가 있고, 자본이라는 티켓이 필요하기에 배제성을 돈주고 산 것에 가깝다. 이런 것들을 살피며, 다른공간인 헤테로토피아를 기존 자본의 노동력이 작동하는 곳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오늘 날 집 이외에 다른 도피처를 자본화한 것이다. 자본이 필수라면,'동역','아이소토피아' 보다는 '다른공간', '헤테로토피아'가 다양해 보인다.
다시 권력. 자본의 권력분산 - 아파트는 참 권력적으로는 미묘하다. 자본적으로 효율적이고, 위생적이고 / 권력적으로는 분산적이다. 고대 그리스의 나타내는 공간 '아고라(agora)'를 해체하고 숨기고 또 숨기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만든다. 우리를 잘게 잘게 쪼갠다. 반대로 안정시킨다. 자본의 힘을 강화시키고, 정치적인 힘을 미디어로 단일시킨다. 직장, 학교 등에서 잠시 만나 단일화된 정치,밈(meme), 일상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스스로 검열한다. '빅브라더'를 넘어서 '스몰브라더'를 형성한다. 한 뜻을 주입하고, 분쟁을 줄인다. 모나지 않게, 세상을 둥글고 보기 좋게 만든다. 동양에 흔히 있는 시스템이었지만, 이것들이 서양에도 뻗어 나아가, PC적인,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으로 악명아닌 악명을 떨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거부를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지구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으며, 잠시 극단적이었던 도덕적 사고가 적당히 자리를 잡아가는 중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가 익숙해져버린 탓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집이라는 자본을 사기 위해. 그것도 갈갈이 쪼개진 것들 중 하나를 사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아주 열심히. 대형자본을 위해. 그리고 대형자본이 만든 집을 사고, 대형 자본을 배불린다. 그래도 우리는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그렇게 자본이라는 미디어가 주변을 가린채 경쟁사회를 부추겼다. 우리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긴다면 그것은 바로 나타내는 공간. '아고라'가 아닐까. 그 역할을 인터넷이 대신 하는 듯 보이지만, 이 또한 이미 변해버린 하나의 지구적 흐름이 스몰브라더가 되어 검열한다. 한 말을 하나하나 검열당하는 세상이 아니라, 잠시 흘러가더라도 다시 생각하고 수정할 수 있는. 나의 실질 존재가 언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3편에서 말한 것처럼 공생을 통해 권력을 쥐어야한다. 공생을 위해서는 나의 수요를 나타내기 부터 해야한다. + 메모: 더 작은 권력(자본)에 힘쓰게 만드는 것. 그로써, 시스템의 권력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동시에 아무도 없으면 불안한.(기념비성 없는 자본공간) - 자본으로 모이고, 남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 싶어한다. 백화점, 대성당 등이 그런데, 사람은 많지만 어떠한 공통적인 공감으로 공동체를 이루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인의 자유'라는 절대불변적인 민주주의의 Republic한 국가관이 주는 일차원적인 사고에서 오는 자체적인 검열에서 오는 사고인듯 보인다. 또한 여기서 오는 공간디자인 사고는 단순히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상품을 판다는 경험없는 공간을 만들기에 바빴다. 하남스타필드는 입점 브랜드를 통해 경험을 주고자한 사례로 보이고, 여의도 더 현대 서울, 파크원이 그 중에 소비자를 가장 신경쓴 백화점으로 보인다. 경험과 쇼핑을 분리하고, 점이지대를 만들어 쉴 수 있도록하고, 밖의 환경을 들여오면서 기존 백화점과 다름으로 사람을 다시 많이 모았다. 그러나 여전히 기념비성이 없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념비성이 오늘날 어떤 혁명으로 성립할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할만한 사회적인 관심이 생길지 부터 의문이다. 공간 그 자체 물리적임으로만 기념비성을 생각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런 기념비적인 행위를 모두가 받아들일만한 공간을 언제나 가지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게 작가의 의도 같아 보인다. 이미 많이 몰려드는, 몰려있는 공간을 어떻게 나타내게, 소통하게 할 것인가. 물리적인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소비되지 않는 공간 - 계속해서 저자는 장소성을 말한다. 소비되지 않고, 활용,이용,사용되는 공간. 용도가 바뀌더라도 그것 자체로 계속해서 흔적이 남으며, 이용되는 공간을 원하는 듯보인다. 그렇지만 소비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도 소비하지 않는다면 왜 존재하는가. 사회를 따라가고 싶지 않다면, 사회를 앞서 이끌어야한다. 선도해야한다. 건축의 중요성을 알리고, 아이코닉하더라도, 모두가 아이코닉하다면 모든 것이 특이한 장소성을 지니며, 마이너함이 존재한다. 마이너함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시 떠오를 개성도 없다. 케이팝이 떠오른 것도, 그들에게 없는 마이너함이 신선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마이너함을 깔고, 그것들을 잘 뽑아내 소비시킬 마케팅이 필요하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아야한다. 인간이 영원하지 않기에 건축이 영원해서 기억으로 남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인간이 영원하지 않기에, 건축은 변해야한다. 물론 추억할 공간 조차 없이 빨리 지나가는 세상은 슬프기도하다. 그렇지만 의미 있는 공간은 남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자본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축에서, 자본의 경계에 서 있는 건축이 되고 싶은 것이다. 뭘해도 자본에 속한다면 자본의 흐름대로 가되, 기업의 공간 생산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누가 달라지겠는가. 교육부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노동과 생각의 분리가 아닌 통합된 사고가 이루어져야한다. 또한 생각에 대한 수용이 다양한 연령층, 계급층에서 이루어져야한다. 그것이 극강의 효율에서 벗어난 탈공업화가 아닐까?
이외에 상품으로써 분류된 전원생활과 도시생활의 구분의 개념. 공간 자체가 아닌, 인간의 허구적인 욕망을 이용한 마케팅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가치산정. 등 자본이 공간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탈공업화와 관련해서. 자연을 통제할 수 없기에 우리는 탈공업화를 실현하고,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류존망에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에 더욱 빠르게 탈공업화를 이루려고 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늦출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맞는 것같다. 그래서 오히려 스페이스X의 화성이주 사업이 현실성이 있다고 본다.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해결책이다. 물론 먼날이기에, 멸망을 늦추는게 효과가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늦추는 사업도 확장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자연을 오히려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 더 좋은 결과로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자연이 우리를 해치지 않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누가 자연을 걱정이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