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 Kluge> - 개리마커스 / 최호영 - 5편(최종)
Kluge 5 행복과 쾌락 ~ Kluge 6 정신질환 까지. 에필로그 전까지의 내용을 다룬다.
분명 다 읽어낼 수 있었지만, 2시간 독서에 대한 것과 떨어지는 집중력으로 인해 글이 곧이 곧대로 읽히지 않았기에 읽기를 그만두었다. 외국어를 해석하는 것처럼 읽혀서 정말 괴로웠다. 눈앞이 흐려지고 화가 났다.
아무튼, 마지막 내용은 그렇다. 행복은 쾌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뇌는 행복을 측정하기 힘들어한다. 오히려 쾌락은 유전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만족의 측정도구를 속이는 것으로서,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별볼일 없는 것이다. 물론 행동 동기라는 목적지가 반사체계로서 자리잡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넘어선 중독이라는 영역까지 넘어선다. 이는 정신질환까지 분류되기도 하는데, 우울증, 편집증 등 대부분의 정신질환들이 인지부조화, 동기에 의한 추론(방어기제)와 같은 망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나도 우울할 때는 별에 별 이유들로 세상이 우울해지곤 한다. 결국 자기 세상을 창조하고, 창조된 세상에서 근거를 찾아 불안 속으로 더 파고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기적으로 분명 유리한 선택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된 근거에 의한 판단 속에서 단기적 욕망에 따르고 마는 것이다. 우울도 어쩌면 쾌락일지 모르겠다.
결국은 진화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전전두피질의 약간의 진화로 인해 숙고체계가 반사체계에 의존하는 애매하게 진화한 클루지 상태에 머물러 있는 불완전한 판단 존재다.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 참으로 믿을 것들이 전혀 없다. 일관성 없이 마구잡이로 불규칙하게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자기 통제와 스스로의 생각을 의심하고 수정해나가야한다.
우리의 개인적인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이 판단하는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아니라, 얼마나 세상에 기여하는 가.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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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이 글을 정리하기가 매우 싫다. 꾸역꾸역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냐. 해야되니까. 이다. 이전에 했던 숙고체계의 판단을 믿고 반사체계에 절여진 나의 지친 몸을 억지로 끌고 나가는 것이다. 이 말을 치면서 굉장히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게 되면서 다시 글 쓰는게 재밌어졌다. 이렇게 변덕스럽다. 나의 뇌와 몸은.
분명 내가 이 글쓰기를 하기 싫었던 이유는 책을 대충 읽어서, 혹은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이다. 큰 맥락 속에서 세세한 것들을 기억하고자해서 머리가 아픈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무의식 속에는 계속해서 인풋과 아웃풋. 읽기와 쓰기를 통해 어떻게든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려니 생각하기도한다. 일단은 그것이 오류더라도 내 최선이니까.
어쩌면 주언규(신사임당)의 <킵고잉>에서 말하는, 허들 낮추기와 매일 시행하는 22전략의 혼합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도 합리화인가? 인지부조화인가? 방어기제(동기에 의한 추론)인가? 일단 믿으면서 그리고 의심하면서 가보자.